가끔 용서가 이루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희생자나 생존자가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고 허락하는 것이다.
앤 로버트슨(Anne Robertson) 목사는 사역 초기에 한 젊은 여성이 그녀의 사무실에 와서 학대하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가 없기 때문에 더 이상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고 말했을 때 이것이 사실이란걸 발견했다.
“저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용서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저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기독교인이 될수 없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러나 용서는 억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로버트슨 목사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는 그녀의 용서를 받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아버지를 용서하며 제 사무실을 떠났고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녀가 아버지를 용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사무실을 떠날 때 그녀는 겉으로 보기에도 달랐습니다. 제가 한 일은 없습니다. 저는 단지 그녀에게 용서는 선물이라는 것을 알려준 것뿐입니다.”라고 메사추세츠 성서공회의 책임자이며 연합감리교회의 목회자인 로버트슨 목사는 말했다.
용서는 각 사람의 구체적인 상황과 관계에 따라 다르게 보이지만 모든 상황에는 공통된 측면이 있다고 마저리 톰슨(Marjorie Thompson) 목사는 말한다. 톰슨 목사는 용서에 관한 두 권의 책을 저술했다.
톰슨 목사는 “용서가 가져오는 결과는 평화, 용서한 상대에 대한 공감과 연민, 상처나 원망의 짐을 짊어지지 않고 내적으로 자유로워진다고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삶의 방식
때때로 용서는 가장 단순한 형태로서 사과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간주되지만 듀크 신학교(Duke Divinity School)의 그레고리 존스(L. Gregory Jones) 목사는 훨씬 더 많은 것이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용서는 “언어, 감정, 몸짓과 연관된 삶의 방식입니다. 우리는 종종 용서가 주로 무언가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이와 관련된 감정과 병행되는 행동이나 몸짓 모두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임상 심리학자이자 버지니아 코먼웰스 대학의 교수인 에버렛 워딩턴(Everett Worthington Jr.)은 화해와 달리 용서는 “관계가 아니라 사람의 속 깊은 곳에서 일어난다”고 말한다.
워딩턴 교수는 용서의 두 가지 범주를 제공한다. 그는 한 사람이 “복수를 추구하지 않고 그 사람이 무엇을 했는지에 관계없이 그 사람을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사람으로 대하기로 결정”할 때 결정적인 용서는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감정적 용서는 “억울함, 비통함, 적대감, 증오, 불안, 분노와 같은 용서할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을 점진적으로 누그러들어 공감, 동정, 연민 또는 사랑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으로 대체하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용서는 선택이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때때로 성경이 용서해야 한다고 가르친다고 믿지만, 전문가들은 용서란 의무에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톰슨 목사는 “하나님은 우리가 용서하거나 용서하지 않을 자유를 주셨습니다. 자동으로 용서하는 것은 없습니다. 용서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진실된 용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용서의 대가를 치른 것처럼 우리도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대부분의 용서는 일종의 여정입니다. 저는 우리가 상처받았을 때, 우리가 즉각적으로 용서하기를 바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용서하기 위한 여정을 서두르면 안 되지만, 용서하려는 노력이 좋은 것임을 증명하는 많은 증거가 있다.
톰슨 목사는 “용서하지 않고서는 결코 자유나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용서합니다. 받은 고통에 집착하는 것은 우리 영혼을 부식시킵니다.”고 말한다.
워딩턴 교수는 연구에 따르면 용서로 인해 “덜 고민하고 그래서 덜 우울하고, 불안하고, 분노가 줄어드는” 그래서 더 나은 영적관계로 가지며, 더 나은 면역 기능과 심장 질환의 위험 감소와 같은 더 나은 신체적 건강에 기여한다고 말한다.
용서해야 할 성경적인 이유가 있다.
톰슨 목사는 “용서는 우리 속에 (창조 시에) 빚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용서합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계획은 모든 인류 안에서 화해와 조화를 위한 것입니다. 용서는 단지 과거를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가는 길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계획이 화해라고 생각합니다. 더 큰 조화를 이루고 그 목적을 위해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고 말했다.
무조건적 용서?
용서의 구현화: 신학적 분석(Embodying Forgiveness: A Theological Analysis)의 저자인 존스 목사는 용서란 “우리가 용서받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우리는 삶의 방식으로서 용서의 습관화하고 실천하는 것을 개발하는 데 전념해야 합니다.” 고 말한다.
그러한 습관화의 세부 사항을 아는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혜와 분별력의 문제”라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용서해서는 안 되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존스 목사는 해를 입히는 사람을 무조건 용서하는 것은 악순환을 지속시킬 뿐이라고 설명하면서 “우리가 적을 사랑하는 연습이 필요한 상황이 많이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학대당한 경우에 그는 “상대방이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완전한 화해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고 말했다.
워딩턴은 동의했다.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결정에 따라서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고 또 용서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사람과 화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위협적이고 위험하고 현명하지 않다면 화해가 요구되지 않습니다.”
다시 용서받고 – 또 다시 용서받고
궁극적인 용서와 화해는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다. 우리는 벌써 그리스도에게 용서받았지만, 우리의 잘못과 은혜가 필요함을 인정하면서 계속해서 그리스도께 나아간다.
우리가 우리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좀 더 그리스도와 같이 되기 위해 노력할 때, 잘못에 대한 고백은 우리가 성장하는 데 도움이된다고 로버트슨은 말한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정직하게 변화하기를 원하는 진정한 회개입니다. 우리가 더 나아지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잘못한 일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가 똑같은 잘못을 매일 밤, 매주 회개할 때, 그 회개는 우리가 그 죄에 대해 직면하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앞에서 받는 용서에는 차이가 없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매일의 삶에서 더욱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데는 차이를 만듭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미국 심리학회 종교 및 영성 분과의 연구원인 워딩턴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거저 주어지는 선물이지만, 우리는 용서가 필요함을 인정하고 간구함으로써 그 선물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기꺼이 우리를 용서하실 것인지 아닌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라고 존스 목사는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변화시키거나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용서를 받는다는 것의 참된 의미의 일부이며, 기도 안에서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용서라고 명함으로써 배우게 됩니다.”
톰슨 목사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우리의 죄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주어진 용서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용서란 선물이 이미 주어졌다는 것을 알면서, 우리가 용서를 필요로 할 때 그 순간을 깨닫고 추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실수로부터 배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용서를 우리 마음에 깊이 새기고, 그 용서가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우리를 치유하고 회복시키도록 용서를 사용하는 것입니다.”라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에밀리 스넬(Emily Snell)은 테네시주 내슈빌에 거주하는 프리랜서 작가이다.
오천의 목사는 한인/아시아인 리더 자료를 담당하고 있는 연합감리교회 정회원 목사이다. coh@umcom.org나 615) 742-5457로 연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