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의 쟁점으로 등장했던 한인 선교연회 의제가 부결되었던 1996년 덴버 총회를 기점으로 한인 여교역자회의와 한인교회의 갈등과 아픔은 극에 달하였다. 그렇지만 격동의 아픔 중에서도 여교역자와 여교역자협의회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했다.
1. 한인 선교연회에 대한 공식적 입장 표명과 갈등
1995년 6월에 로키마운트 연회의 강영숙 목사와 북일리노이 연회의 박영옥 목사가 감리교 총회에 총대로 한인 여교역자로서 선출되었다. 같은 해 8월 세계감리교 여교역자대회가 열렸고 전체 800여 명 중, 한인 여교역자는 23명이었다. 한인 여교역자회들이 아침 묵상, 워크숍, 예배 인도와 패널 등으로 여러 분야에서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세계 여교역자대회 중 한인 여교역자회는 모임을 했고 여교역자들은 한인선교연회가 우리의 한인교회에 대한 비전에 어긋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고, 공식적인 입장을 최초로 발표하였다.
2. 갈등의 극치
2005년 8월 10일에 있었던 총회 임원선거에서 한세희 목사가 회장, 홍혜성 목사가 부회장으로 선임되었고 총무로 황인숙 목사, 회계로 박종연 목사, 서기로 고국현 목사가 임명되었다. 또한 특별위원회(Task Force)를 선출하여 한인 선교연회에 대한 한인 여교역자회의 반대 입장을 문서화하였다. 여교역자의 선교연회에 대한 공식적 반대 입장이 표명된 후 한인 전국연합회 임원들은 유감을 표명했다.
세계선교부 이사들의 한인 선교연회에 대한 찬반 투표가 있었고, 그 결과, 선교연회 의제가 부결되었다. 이후 한인 여교역자와 남교역자 사이는 첨예한 갈등과 적대감이 시작되었다.
선교연회의 사건은 서로의 다른 의견을 품어 주기보다 비방하고 적대시하여 한인 연합 감리교 공동체를 분리하고 깊은 상처를 남긴 마음 아픈 사건이었다.
3. 선교연회 의제와 1996년 총회
의제가 부결된 이후, 남교역자회와 여교역자회가 화해를 위한 회의를 했지만, 별다른 합의를 보지 못한 채 회의는 종결되었다. 1996년 총회 동안 총회 소분과위원회에서 한인 선교연회에 대한 토의가 두 차례에 걸쳐 있었는데, 선교연회에 대한 반대 의견이 압도적인 탓에 선교연회 대안으로 “한인 목회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How to Strengthen the Korean Ministry)라는 주제로 바뀌게 되었다. 이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조직하여 연구하되 2000년 총회까지 보고하도록 결정하였다. 이를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 투표권자는 24명으로 하되, 남 교역자 4명, 여교역자 4명, 남 평신도 4명, 여 평신도 4명, 차세대 교역자 4명 그리고 감독 4명 등으로 구성하였다.
4. 화해와 성장을 위한 모색
1996년 8월 5~8일에 여교역자 총회가 “2000년대를 향한 우리들의 비전과 선교를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엘에이에서 열렸다. 1988년에 만들어진 선교 선언문(Mission Statement)을 중심으로 조하경 목사가 주제 강연을 하였고, 여러 가지의 방안이 토의하였다. 여교역자의 내부적 화합을 도모하고, 장기적 계획을 세우며, 재정적인 독립을 모색했고, 여선교회 회원들과 협력하였고, 전국연합회와의 회복을 노력하였다. 선교연회라는 의제는 여교역자와 남교역자 사이의 갈등을 고조하였지만, 여교역자회가 대외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6년 최초로 조하경 목사가 한인 여성목회자로 감독 출마를 하였다. 또한 한인 목회정책위원회 모임에 여교역자와 여평신도의 참여가 신장되었다.
5. 전국연합회와 여교역자회
13차 여교역자회의는 1997년 8월 모국 여교역자회의 초청으로 한국, 광림기도원에서 “Women in Ministry and Spiritual Renewal"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여 교역자의목회와 사례를 나누는 책을 만들기 위하여 출판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이듬해 5월에 엘에이에서 열렸던 선교대회는 선교연회를 의제로 감정적으로 대립했던 남녀 교역자를 자연스럽게 한자리에 모이게 했다. 이 선교대회에서 황인숙 목사가 여교역자회 회장의 자격으로 아침 성경 공부를 인도하였는데, 이는 남녀 교역자 간의 화해의 시도였으며, 또한 이 모임은 한인 여교역자가 전국연합회에서 성경 공부를 인도한 최초의 모임으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1990년 로스앤젤레스 한인감리교회에서 있었던 전국연합회 모임에서 여교역자회가 화요일 저녁 집회를 인도하여 설교, 사회 또한 세례 재확인식을 집례하여 화해를 도모하였다.
6. 내실을 통한 안정기
1998년도 여교역자 총회가 8월 10~12일 뉴욕에서 있었다. 이 시기는 여교역자회의 연륜이 더해감에 따라 여교역자들이 각 교회와 소속 연회와 교단 내에서는 영향력 있는 지도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제15차 여교역자총회는 1999년 8월 13~16일 덴버에서 열렸다. 이 시기 총회 대표로 선출된 강영숙 목사, 문성자 목사, 박희로 목사, 그리고 한세희 목사, 김수미 목사, 황인숙 목사가 지역총회 대표로 선출되었다. 이때 2000년 총회에 상정할 한인목회강화를 위한 청원서가 설문 조사를 거쳐 만들어졌으며 6가지의 중점 목표들을 설정했고 그중 하나가 한인 여교역자의 지도력 개발이었다.
2000년도 제16차 여교역자총회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포스트 모던 세계 속에서의 여성의 지도력”(Women's Leadership in the Post-Modern World)이란 주제로 총 38명이 참석했다. “한인목회강화를 위한 총회 청원서”가 5월 클리블랜드에서 있었던 200년 총회에서 통과되었고, 강영숙 목사는 7월 서부지역 감독 선거에서 감독 후보로 지명되었다. 한인목회강화위원회에 여교역자회를 대신하여 일할 3명의 대표를 우선 선임하였다.
7. 지속적인 성장
이 시기는 전국적으로 한인교회를 담임하는 여교역자의 수는 소수였지만, 한영숙 목사가 1982년 8월 15일 뉴욕의 맨해탄에 고려한인감리교회를 개척하여 사역 중이고, 엘에이의 강현철 목사는 1992년 영화감리교회의 담임목사로 파송 받아 사역하였다. 북 일리노이 연회의 박미숙 목사는 중북부 여교역자 최초로 한인을 위한 1997년 3월 샘물교회를 개척하였다. 또한 시카고의 김영선 목사는 2세들을 위한 목회를 시작한 최초의 한인 여교역자이며, 손수지 목사는 켄터키에서 켄터키제일한인연합감리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였다.
2000년을 중심으로 또한 여 교역자의 지도력은 세계대회(Global Church)를 향하여 넓혀갔으며, 김수미 목사가 총회 여권신장위원회의 총무, 강영숙 목사가 세계선교부 사무차장, 조하경 목사가 뉴잉글랜드 연회의 연회 총무, 신경림 목사가 웨슬리 신학교 부총장, 김애라 목사가 오하이오 신학교 교수로, 여금현 목사가 이중문화 가정목회 및 무숙 여성 목회를, 그리고 이남옥 목사가 브라이드 영성훈련원의 원장으로 목회의 장이 넓혀감으로 여성 목회의 다양성을 더해갔다.
창립 20주년을 맞이하여 2004년 여교역자회는 워싱턴에서 연차대회를 했는데 60여 명의 회원과 3명의 한인 감독이 참석 (김해종 감독, 박정찬 감독, 정희수 감독)하였으며 부시 대통령의 축하 메시지가 대독 되였다. 11대 여교역자회의 회장은 신경림 목사, 부회장 성백은, 총무 김명임, 회계 박미숙, 그리고 서기는 Amy Yoon 목사였다.
2005년 여교역자 연차대회는 기독교 대한 감리회 여교역자 활동 113년과 여성 목사 안수 50주년을 축하하기 위하여 미 한인 여교역자들이 한국에 가서 함께 연차 대회를 했다.
이 시기 여교역자회와 한인목회강화위원회와 함께 Task Force를 조직하여, 한인 여교역자들의 한인교회 파송, 한인 목회를 위한 훈련 프로그램 등의 사역을 시도했으나, 안타깝게도 한인교회 목회를 희망하는 여교역자가 없어서 2015년 여교역자회와 의논 끝에 해체하기로 하였다.
2006년은 미연합감리교회 여교역자 정회원 50주년을 기념하는 모임이 시카고에서 열렸고, 전 미국에서 참여한 많은 한인 여교역자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지도력이 발휘했다. 2010에는 13대 임원진들(2007~2009년)의 노고로 오랫동안의 염원이었던 여교역자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출판하게 되었다. 30명의 여교역자가 그들의 소명 이야기와 목회에 대한 여정을 “The Holy Seed of Calling”이란 책을 통하여 나누었다.
한인 여교역자회의 커다란 전환점은 2013년에 연차대회를 전국 연합회와 함께하기로 한 결정이다. 특별히 2005년부터 2023년 사이에 한인 여교역자의 괄목한 성장은 교단과 각 연회에서 그들의 지도력을 인정받고 지방 감리사로 파송을 받은 것이다. 2005년에 로키 마운튼 연회의 강영숙 목사를 시작으로 많은 한인 여교역자들이 감리사로 파송 받아 각 연회를 섬기고 있다.
전, 현, 그리고 신임 한인 여성 지방 감리사
- 강영숙 (Rev. Youngsook Charlene Kang) – Rocky Mountain Conference
- 김옥연 (Rev. Ouk Yean Kim Jueng) – Northern Illinois Conference
- 황인숙 (Rev. In-Sook Hwang) – Illinois Great Rivers Conference
- 곽지선 (Rev. Jisun Kwak) – Greater New Jersey Conference
- 박영미 (Rev. Young-Mee Park) – Northern Illinois Conference
- 김선영 (Rev. Sun Young Kim) – Virginia Conference
- 한세희 (Rev. SeHee Han) – California-Pacific Conference
- 사경희 (Rev. Kyunghee Sa) – Delaware Conference
- 김지나 (Rev. Gina Kim) - Greater New Jersey Conference
- 이은주 (Rev. Eunjoo Lee) – Illinois Great Rivers Conference
- 이문영 (Rev. Moonyoung Kathryn Lee) – California-Pacific Conference
- 홍인숙 (Rev. Insook Hong Peebles) – Indiana Conference
- 정화영 (Rev. Hannah Hwa-Young Chong) – Northern Illinois Conference
지난 1985년 한인여교역자회가 시작된 후에 한인 여교역자의 지위와 발전을 위해 수고하신 역대 여교역자 회장과 그들의 임기는 아래와 같다:
- 1985-1987: 오혜식 (Rev. Oh Hye Sik)
- 1987-1989: 조하경 (Rev. Hakyung Cho)
- 1989-1990: 류원화 (Rev. Won Wha Ryu)
- 1990-1992: 김혜선 (Rev. Hye Sun Kim)
- 1992-1993: 윤남옥 (Rev. Nam Ok Yoon)
- 1993-1995: 문성자 (Rev. Sung Ja Moon)
- 1995-1997: 한세희 (Rev. SeHee Han)
- 1997-1999: 황인숙 (Rev. In Sook Hwang)
- 1999-2001: 강영숙 (Rev. Young Sook Kang)
- 2001-2003: 김애라 (Rev. Ae Ra Kim)
- 2003-2005: 신경림 (Rev. Kyung Lim Shin)
- 2005-2007: 박영옥 (Rev. Young Ok Park)
- 2007-2009: 박성희 (Rev. Sung Hee Park)
- 2009-2011: 김명임 (Rev. Myung Im Kim)
- 2011-2013: 김옥연 (Rev. Ouk Yean Kim Jueng)
- 2013-2015: 박영미 (Rev. Constance Pak)
- 2015-2017: 안선욱 (Rev. Sunny Ahn)
- 2017-2019: 강혜경 (Rev. Hyekyung Pauline Kang)
- 2019-2021: 김소영 (Rev. SoYoung Kim)
- 2021-2023: 이선영 (Rev. Sunyoung Lee)
1985년부터 현재까지의 38년의 한인 여교역자 역사를 뒤돌아볼 때 여교역자들을 부르시고 주의 사명을 맡기신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느낄 수 있다. 여교역자 협의회의 형성과 발전을 위하여 힘쓴 모든 교역자의 노고를 치하하며, 여교역자들은 앞으로도 한인 감리교와 한인 사회 그리고 세계의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하여 계속하여 헌신해 나갈 것을 다짐한다.
한세희 목사는 연합감리교회에서 수년간의 목회와 감리사직을 마치고 은퇴하였다.
오천의 목사는 한인/아시아인 리더 자료를 담당하고 있는 연합감리교회 정회원 목사이다. coh@umcom.org나 615) 742-5457로 연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