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과 포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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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iNGstones (2017년 4월호) - 다인종 목회를 지향하며

학교에서 온갖 인종이 어우러져 함께 공부하고 함께 뛰놀면서 자라난, 그리고 그렇게 자라나고 있는 세대들의 눈에, 백인은 백인끼리, 흑인은 흑인끼리, 한국인은 한국인끼리, 인종별로 뚜렷하게 나뉘어 드려지는 예배에서 하나님은 대체 어떤 하나님으로 비칠까? 인종 차별을 극복하지 못하는 교회의 증거가 젊은 세대들에게 과연 어떤 힘을 가질까?


미국은 말할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다민족, 다문화, 다인종 사회로 변화해 가고 있다. 또한, 연합감리교회를 위시한 이른바 주류(mainline) 교파들이 지난 60여 년 내내 꾸준히 교회 출석률과 교회 재정 면에서 쇠퇴를 경험해 왔다. 이제는 남침례교회(Southern Baptist)조차도 같은 하향길로 접어들었다. 사회의 변화와 교회의 쇠퇴, 이 둘 사이에는 어떤 상관성이 있을까?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계시는가?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우리 교회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현재 미국에 있는 교회들이 경험하고 있는 쇠퇴와 감소는 단순히 한 가지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Brian McLaren이나 Phyllis Tickle이 설명하듯이, 기독교 교회는 지금 한 500여 년마다 한 번씩 다가온 원천적인 변화의 바로 그 문턱을 넘어가고 있다. 그래서 교회의 저조함을 무턱대고 목회자들의 잘못, 교인들의 책임, 혹은 신세대의 도덕성 몰락의 탓으로만 몰아붙일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고도 모자라는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일단의 개인이나 몇몇 집단의 탓으로 몰기에는 너무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따라서 전혀 다른 패러다임의 전이를 꾀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1. 회중이 단일 민족, 단일 인종만을 고집하면, 점점 다양화되는 사회 속에서 자리를 잃게 된다.

다인종 목회만이 교회 쇠락의 해결책은 아니다. 하지만 그 해결책 중의 하나인 것만은 확실하다. 오래전 Martin Luther King, Jr.의 언급대로, “주일 11시는 미국에서 가장 인종적으로 나뉘어 있는 시간”이다. 지금도 백인은 백인끼리, 흑인은 흑인끼리, 히스패닉은 히스패닉끼리, 한국인은 한국인끼리, 모두 각기 나뉘어 예배드린다. 학교에서 온갖 인종이 어우러져 함께 공부하고 함께 뛰놀면서 자라난, 그리고 그렇게 자라나고 있는 세대들의 눈에, 이렇게 인종별로 뚜렷하게 나뉘어 드려지는 예배에서 하나님은 대체 어떤 하나님으로 비칠까? 예수님을 두고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에베소서 2:14, 16) 하셨다고 아무리 외쳐도, 인종 차별을 극복하지 못하는 교회의 증거가 젊은 세대들에게 과연 어떤 힘을 가지겠는지 물을 때가 되었다.

2. 성서에서 주님은 주를 따르는 모든 이들이 하나가 되는 것을 하나님께 기도하셨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한복음 17:21). 세계 어디를 가나 사회적인 지위나 계급, 경제력, 교육 정도 등등을 이유로 사람들 사이에 차별이 자행된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도 차별은 마찬가지이다. 특별히 백인의 타 인종에 대한 차별은 시대를 따라 그 양상을 달리할 뿐 여전히 심각하다. 경찰에 의한 흑인 남자들의 연이은 총격 사건들도 그 심각성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유색인종으로 미국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 한국인들도 그 실상을 잘 알고도 남음이 있다.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헐고 하나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허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계실까? 우리를 대상으로 벌어지는 인종 차별에만 분개하고, 다른 이들은 똑같은 방식으로 업신여겨도 될까? 이제야말로 인류 전체가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믿고, 그것을 믿는 이들답게 나와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 한 자리에서 함께 예배하고 함께 주를 섬길 때가 되었다.

3. 단일 민족, 단일 인종 목회의 필요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지속성은 장담할 없다.

같은 문화, 같은 언어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신앙 생활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쉽게 서로 이해하고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사 한 교회가 단일 민족으로 시작한다고 해도, 이민 1세대가 곧 당면하게 되는 현실은 자녀들의 신앙 교육이다. 이민 2, 3세대는 학교 교육을 통해 이미 다인종 문화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그와 같은 다양한 환경 안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다. 단순히 내 자녀들을 내가 다니는 단일 민족 교회에 출석하게 하려고 무리하기보다는 우리 교회가 지역사회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고, 우리와 다른 이들에게 문을 활짝 열고 그들과 더 활발하게 교류하고 협력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즉 다인종 목회에 대한 시각을 넓히고 그 방향으로 힘써 나아가야 할 때라는 말이다. 그것이 나의 자녀들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교회가 여러 세대를 통해 생명력을 유지하고, 더 나아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맡기신 하나 됨의 사명을 더 높은 차원에서 이루는 길이 될 것이다.

4. 2040~2050년이면 미국은 소수 민족이 주류를 이루는 사회가 된다.

미국 내에서 다인종 목회를 지향하며 Mosaix Global Network를 이끄는 Mark DeYmaz에 따르면, 2042년이면 미국은 백인이 다수였던 사회에서 소수 민족이 다수인 사회가 된다. 2019년이면 미 전체 어린이 중 소수 민족의 자녀들이 단연 주류를 이루게 된다. 이미 이 현상은 미국 사회의 역학적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수는 힘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인종 차별은 하나님께서 예수의 삶,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 이루신 화해와 화합에 반하는 행동이다. 역사를 통해 오랫동안 자리 잡아 온 차별의식을 고치는 일은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교회들이 다시 생명력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이루신 구원의 역사를 우리가 지금까지보다 한 차원 높여서 계속해 간다는 의미에서 함께 힘써야 할 것이다.

5. 문화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고, 문화권 사람들과의 교류를 장려한다.

외딴 섬에서 살 듯 오랫동안 서로에게서 분리되어 생활해 왔기 때문에, 다른 민족, 다른 인종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팽배하다.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최선의 길은 타 문화에 대한 감수성(cross-cultural competency)을 높이고, 직접 만나 시간을 함께 보내고,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가 되는 것이다. 이때 기억해야 할 것은, Mark DeYmaz의 말대로, 타 문화권 사람들 사이에서 교류를 꾀할 때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이 100%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친절함과 존경심을 가지고 상대방에게 접근한다 해도, 또 아무리 상대방을 언짢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해도, 서로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불쾌감을 일으킬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언짢게 했을 때 즉시 사과하고 그 일을 통해 서로를 더 잘 이해하며 겸허한 자세로 친분을 계속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 안에서, 특별히 예배라는 환경 안에서 이루어지면, 이때껏 경험하지 못했던 주 안에서의 하나 됨의 기쁨을 맛보며 함께 복음의 의미를 새롭게 깨달아가게 될 것이다. 이 새로운 차원의 복음의 실현은 이때껏 교회 밖에 있던 세대들이 이에 동참할 귀한 동기를 부여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글쓴이: 이인용 목사, Cokesbury UMC in Charlotte, NC
올린날: 2017년 4월 1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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