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어원의 뿌리를 보면,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학문이다. 조금도 과장하지 않고, 그러한 학문은 대담하다. 어떻게 인간의 사고로 하나님을 이해하기를 바랄 수 있나? 많은 사람은 성 안셀름이 쓴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Faith Seeking Understanding)”에서 시작한다. 신학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그다음 단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서 행하도록 부르신 것을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장애 신학의 주된 관심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지만 다른 사람들과 많이 다른 사람들이다. 이러한 다름 중 일부는 제한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이해 방식 혹은 일을 해나가는 다양한 방법에 대한 인간의 견해일 뿐이다. 신학적인 연구는 우리에게 “여호와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본다”는 것을 알려준다. (사무엘상 16:7, 개역개정)
또한 신학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여정 속에서 경험되는 삶을 반영한다. “이 여정 속에서 하나님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이 사는 방식과 그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고 인도하심을 발견하는 곳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 만날 때, 우리는 신앙 공동체의 규칙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을 찾는 것이다.
신학은 또한 우리의 소명과 우리가 모두 직면한 욕구를 상기시켜 준다.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때로는 이러한 욕구를 일부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즉 그것은 우리가 모두 하나님 앞에 동등하다는 것을 말한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이익이 되는 은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은사는 서로 다를 수 있지만, 은사가 건강한 것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장애를 가진 사람을 위한 사역이 아닌 그들과 함께하는 사역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장애 사역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지 섬기거나 모두가 참여하는 포함을 넘어서는 것이다.
또한 신학은 실제적이고 현세적인 차원이 있어야 한다. 구조, 본성, 규범 및 가능성에 대한 논의에는 후속 조치와 행동이 함께 해야 한다. “통합장애운동(dyspraxia)”이라는 용어는 때때로 자신의 신학적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경우에 적용된다.
관련자료
- 연합감리교 장애우와 함께하는 목회자 협회의 장정을 포함한 신학 자료
-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온전함의 신학” 선교적 지혜 제단(Missional Wisdom Foundation)
- “더 나은 장애 신학을 향하여” 질 벤더젠드(Jill VandeZande), 2018년 2월
- “장애 신학: 예수의 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 존 스위톤(John Swinton), 2016년 6월
- “천국에서 장님이 볼 수 있나요?” 켈시 달라스(Kelsey Dallas), 데저레트 뉴스(Deseret News), 2016 년 3 월 26 일
- "예외를 환영하기: 장애인을 포용하는 교회는 생각보다 더 많은 일을 한다." 크리스쳐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 사설, 2010 년 1 월 4 일
- 신앙과 장애에 대한 협력(collaborative on Faith and Disability)
- 신학과 장애 연구소(Summer Institute on Theology and Disability)
- 신학과 장애 연구소(Summer Institute on Theology and Disability) 과거 발표 자료
오천의 목사는 한인/아시아인 리더 자료를 담당하고 있는 연합감리교회 정회원 목사이다. coh@umcom.org나 615) 742-5457로 연락할 수 있다.